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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날 아침의 기억 2

사랑을하다

by 슈테른 2007. 12. 4. 01:30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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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명히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는데, 깨어나 보니 그가 침대 끝 저만치에 누워 있었다. 누구처럼 ‘나, 이 사람을 200년 동안 사랑하리라’는 다짐을 속삭이기에는 너무나 로맨틱하지 않은 거리. 그냥 그렇게 누워 잠시 눈을 껌벅거려본다.

꼭 껴안은 채 눈을 뜨고, 눈앞에 보이는 그의 입술이 너무 사랑스러워 살짝 포개던 촉촉한 기억은 어디로 간 것일까. 내 팔 한 짝의 길이만큼 벌어진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.

오래전.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세게 껴안고 잠들어가던 찰나의 순간. 내가 이러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. 너무 행복해서 현실이 오히려 꿈같았던, 그래서 한순간 손을 놓으면 안개처럼 사라질까봐 불안해했던 시간. 그와의 만남이 환영이 아니기를 매일 밤 잠들기 전,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했었다. 이것이 정말 꿈이라면, 깨지 않게 해주세요. 이것이 현실이라면 저에게 영원을 주세요, 라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바람을 중얼거리며.

사용자 삽입 이미지

영화 <봄날은 간다>의 한 장면

그게 그렇게 오래된 일이었던가? 더는 숨이 막힌다는 이유로 세게 껴안지도, 하고 싶은 일이 많아 행여 그대로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도, 어느 새부턴가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. 끝없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일 것 같던 하루가 날마다 현실이 되어갔고, 침대에 누우면 기도는커녕 숨고를 시간도 없이 3초 만에 잠들어버리는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.

침대 끝 멀리 보이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세월 따라 변해버린 사랑의 모습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. 하지만, 누가 그랬다.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라고.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이를 먹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사람도 변하고 주변도 변해간다. 사람이 세상의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, 그 바뀐 세상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.

사랑은 항상 한결같다. 그냥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, 어느 순간 처음이 그리워지고, 그래서 그런 날들을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뿐이다.

그날 아침. 멀리 떨어져 누워 있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 위에 놓인 것은 시간이 선물해준 농익은 사랑이었다. 닭살 돋는 사랑의 속삭임 대신 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, 파바로티의 노래도 그보다 아름답진 않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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